“10년간 팬텀으로 살아왔지만 마지막 아쉬움 커”
▲ 배우 카이가 '팬텀(에릭)' 역으로 뮤지컬 '팬텀'의 10주년 기념 공연 그랜드 피날레 무대에 선다. ⓒEMK뮤지컬컴퍼니
배우 카이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그랜드 피날레로 팬텀과 함께한 10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카이는 '팬텀(에릭)' 역의 배우 가운데 유일하게 총 다섯 번의 공연 중 재연(2016년)을 제외한 4번(2015년·2018년·2021년·2025년) 무대에 오른 팬텀 최다 출연자다. 가장 오랜 시간 작품과 함께하며 우정을 쌓아온 만큼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며 팬텀을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팬텀은 카이의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그는 팬텀에 대해 "처음으로 뮤지컬만의 묘미와 기쁨·감동을 얻게 해준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팬텀을 연기하며 오페라 가수라는 성악학도 시절 꿈을 이룬 것 같다는 그의 표현처럼 무대 위, 카이는 팬텀이었고 팬텀은 카이 그 자체였다.
극 중 팬텀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경험한 음악을 '크리스틴 다에'에게 가르치는데 카이도 한세대학교 공연 예술학과 뮤지컬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팬텀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팬텀은 선천적 얼굴 기형으로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이 가려진 안타까운 인물이다. 팬텀이 갖춘 자질과 능력을 고려할 때 오페라극장은 그가 있어야 할 가장 최적의 장소였지만 지하 세계에 숨어 살며 다른 이들에게는 두려운 괴물이나 유령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흉측한 얼굴 탓에 그가 가지는 한계다.
카이는 “사람들은 모두 기형적인 면을 갖고 있다”면서 “이 뒤틀린 부분은 얼굴에만 국한하지 않고 마음속 그릇된 생각부터 사람 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작중 팬텀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면을 가면으로 가렸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드러나지 않게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 뮤지컬 '팬텀'에서 배우 카이가 연기하는 팬텀은 흉측한 얼굴로 인해 가면을 쓰지만 이중성을 지니고 사회적 가면을 쓴 대다수의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EMK뮤지컬컴퍼니
카이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회적 가면(페르소나)를 장착하고 이중성을 지니는데 팬텀도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일 것 같았다”며 캐릭터에 깊게 공감하고 있음을 전했다.
이어 “그래서 가면을 쓴 상태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면서 팬텀의 삶을 거울 삼아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카이는 팬텀의 이번 공연이 관객들에게 선물 같은 공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10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지만 초기 흐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팬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초반의 향수가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카이는 “무대 자체만 보면 큰 변화는 없다. 그래서 맨 처음 무대에 오른 그때가 바로 어제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팬텀은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완성형에 가까운 웰메이드, 잘 만들어졌다는 것을 방증하듯 10년 전 초연 당시 호흡이나 합이 지금까지도 맞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에서 관심을 두고 보면 좋은 장면은 무엇일까.
“마음이 한층 더 따뜻해진 카이표 팬텀을 주목해달라”고 그는 강조했다.
카이는 “작품에서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노래를 지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둘은 나란히 서 팬텀이 선창한 다음 크리스틴이 후창을 한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더 빛나기 위한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함께 화음을 맞춰 아름다운 하모니를 빚어내는데 따뜻함이 관객석에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팬텀의 첫 공연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카이는 팬텀이 10주년 기념 마지막 공연에 돌입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3~4년 주기로 10년에 걸쳐 팬텀의 무대에 올랐다. 나에게 팬텀은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는, 반가운 손님뿐만아니라 인생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어서 그런지 마지막이 유독 아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 배우 카이는 10년에 걸쳐 뮤지컬 '팬텀' 무대에 섰지만 사실상 마지막을 앞두고 공연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EMK뮤지컬컴퍼니
그래서인지 남은 회차가 줄어들며 공연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보낼 때의 허전함이 해냈다는 안도감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요즘은 전날 공연이 남긴 감흥이 다음날까지 지속되기도 한다고.
아쉬움을 안고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데 아름다운 이별이 가능하겠냐는 카이의 말은 팬텀과의 깊은 우정을 다시금 확인하게 했다.
이렇게 작품에는 세 시간 남짓한 공연에 완벽한 팬텀으로 서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무대 위에선 가장 멋진 팬텀 역으로 분하지만 관객과 마찬가지로 그 시간의 끝나감을 안타까워하는 팬텀이 있다.
카이는 “무대에선 배우의 연기를 통해 장면이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면서 “그래서 목소리와 표정 등 배우의 작은 몸짓 하나가 한데 모여 관객에게 여운을 전하고 뜻깊은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는 극 안에서 느낀 즉각적인 감정에 충실할 때 비로소 배우의 순수한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너는 나의 음악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14년 차가 된 카이가 수줍게 마음을 표현했다. 이는 작중 팬텀이 사랑하는 ‘크리스틴’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로 작품의 1막 넘버 ‘넌 나의 음악’에서 등장한다.
카이는 관객에게 감사 인사 대신 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전했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공연도 관객이 없으면 무대는 열리지 않는다. 반대로 관객이 많아도 마음의 문을 열고 듣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며 “배우가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작품에서 노래할 수 있는 건 관객들의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 덕분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나를 노래하게 하는 이는 관객이다. 그래서 작중 팬텀인 자신에게 관객은 크리스틴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대상이며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는 힘이자 더 나은 노래와 연기를 펼치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카이는 “관객이 있어 배우와 무대가 존재하고 작품이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출처 : 스카이데일리 이유경 기자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77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