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1980년 5월 광주의 봄은 총성과 함께 시작됐다. 그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외침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45주년을 맞는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도약이었다.
유신 독재의 그림자, 시민의 자유를 억누른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국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언론의 자유는 사라지게 되었고, 야당의 활동은 위축되었으며, 긴급조치를 통한 무차별 구금과 고민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국민적 반감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결국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고, 대학생과 시민, 야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봄'은 정치적 해방을 요구하는 평화 시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민주화로 나아가기보다는 군부 권력의 재집권으로 흐르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군 내부의 실권을 장악했다. 1980년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이 확대되고 국회를 강제 해산시키며 군사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고, 언론은 다시 통제되었으며, 대학교는 휴교 조처가 내려졌다.
민주주의를 향한 불꽃, 광주에서 타오르기 시작한다.
위를 계기로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시위가 시작되었다.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휴교 조치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계엄군(공수부대)이 투입되어 시위대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했다.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시민들이 분노하며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5월 19일, 시위는 광주 도심 전체로 확산하기 시작했으며 집단 구타와 체포를 계속해서 이어졌다. 계엄군은 시민들을 잠재시키기 위해 곤봉, 총검, 헬기 등을 동원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광주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 충돌이 발생했다.
5월 20일, 시민군이 형성되었고, 도심 대규모에 집회가 모이기 시작했다. 버스, 택시 기사들까지 시위에 참여하였고, 차량 시위를 통해 군 진압에 항의했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포했으며 이에 따라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무장한 시민군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다음날인21일에는 완전히 광주가 고립되고, 계엄군은 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광주는 외부와 차단된 상황이었으며, 언론 통제와 왜곡된 보도로 인해 외부에는'광주 폭동'으로 알려졌다. 5월 26일 정부는 '폭도 진압'을 명분으로 계엄군을 재투입하였으며 시민들의 요구인 평화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5월 27일 새벽 4시,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무력 진압을 개시했다. 시민군은 마지막까지 비폭력 항복이 아닌 끝까지 저항하였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군 중의 다수는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체포되었다. 도청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시민군이 희생하며, 5.18 민주화 항쟁은 물리적으로 종료되었다. 항쟁은 군의 강제 진압으로 끝났지만, 그 정신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광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점이 되다.
광주에서 들려온 총성들은 결코 지역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눌린 국민들이 자유를 향해 내디딘 절박한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5.18 민주화 항쟁의 배경과 과정을 되짚는 일은 단지 과거를 추모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일이며, 5.18 항쟁은 지금의 민주화가 있기까지의 중요한 상징이자 현재와 미래의 민주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기억해야 한다.
한동안 5.18은 '폭동', '북한 개입' 등으로 왜곡되었고, 진실은 감춰졌다. 지금도 일부는 사건을 숨기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려 한다. 진실을 바로잡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아픈 역사를 숨기고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가 5.18 민주화 항쟁을 기억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들을 고문하고 조사를 벌이며 인권 탄압의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올해 6월 10일에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새롭게 개관하게 된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그날의 아픔을 전시와 교육 시설을 통해 기억하며 희망으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기념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기념의 공간', '기억의 공간', '교육의 공간', '연대의 공간'으로 나누어져5.18 민주화 항쟁을 기억할 수 있도록 준비될 예정이다.
광주에 위치한 국립 5.18 민주묘지, 5.18 기념문화센터, 옛 전남도청 등은 당시의 생생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의 공간을 찾는 일도 그날을 되새기는 우리의 노력이 될 수가 있다. 결국 5.18 정신의 핵심은 시민 스스로가 투표에 참여하고,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참여하는 민주주의'에 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5.18을 살아 있는 기억으로 만드는 우리의 행동이다.
작성자: 허유진 기자
디자인: 안은연 기자
담당자: 홍숙영 대외협력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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